못자고 못먹고…울산화력 참사 피해가족·소방관의 '심적 고통'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력감, "살려내지 못했다" 죄책감 호소
전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려…지속적 심리 관리 필요"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밥이 넘어가질 않아요."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이후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많이 되뇌는 말이다.
사고 발생 8일째인 13일 붕괴 현장 수색은 사실상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총 7명의 매몰자 중 6명의 주검이 수습된 가운데 현장에는 아직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1명만이 남아 있다.
이번 사고 이후 매몰자 가족과 구조대원들은 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고 직후부터 현장에서 심리지원 활동을 해온 이은정 대구대학교 청소년상담학과 교수 겸 적십자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활동가는 "대부분의 가족이 잠을 못 자거나 식사도 제대로 못한다"며 "울다 못해 쓰러지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분도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가족들은 사고 초기엔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생환 소식이 들리지 않자, 이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과 상실감을 호소했다.
가족뿐 아니라 사고 수습에 투입된 구조대원들도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 교수는 "상담받으러 온 구조대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타깝다', '미안하다'는 말"이라며 "잠도 못 자고 힘든 현장을 오가며 버티는 상황에서 원하는 만큼 구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한 소방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무너진 잔해 속에서 한 명 한 명 어렵게 접근해 구조를 시도했지만, 생존자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며 "저뿐 아니라 많은 동료가 살려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사고로 인한 심리적 충격이 장기적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 교수는 "지금은 충격과 슬픔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아직 PTSD 초기 증상은 나타나지 않지만, 굉음과 사이렌 등 사고 현장을 연상시키는 자극이 방아쇠처럼 작용할 수 있다"며 "가족과 생존자, 구조대원 모두 지속적인 심리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특히 가족을 사고로 잃은 경우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녀를 잃은 부모는 '내가 편하게 지내도 되나' 하는 죄책감으로 자기 돌봄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지체계가 충분히 뒷받침돼야 회복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는 사고 현장에 재난 심리활동가 49명을 파견해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 소방 구조대원에 대한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심리상담 부스 운영에 이어 피해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심리적 응급처치(PFA)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9시까지 일주일간 생존자·피해자 가족 39명, 구조대원 8명 등 모두 47명에게 심리 상담이 이뤄졌다.
울산시 남구 피해자 통합지원센터, 안전보건공단 트라우마센터 등 여러 기관도 현장에서 심리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오영민 중앙사고수습본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현장 브리핑에서 "구조대원에 대한 심리지원과 특수검진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하겠다"며 "가족분들에 대해서도 울산시 통합지원센터뿐 아니라 의료지원 등 필요한 부분을 관계기관이 협력해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jjang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