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 철골 없애고 상부에 인력 투입?…붕괴 원인 의심 정황들
울산화력 보일러타워 전도 위험 높은데… "안전계획서 허술"
'사전 취약화'에 비숙련자 투입 등 무리한 작업 의혹도 제기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장지현 기자 =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수습이 한창인 가운데, 사고 원인으로 의심되는 정황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가 10일 보일러 타워 발파와 해체 계획이 담긴 문건들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획대로 작업이 이뤄졌는지, 계획 자체가 적절히 수립됐는지 등 살펴볼 대목이 적지 않았다.
◇ 하부 철골 제거하고 상부에서 작업…순서 뒤바뀌었나
우선 보일러 타워 해체 시공사인 HJ중공업이 작성한 '울산 기력 4·5·6호기 해체공사 안전관리계획서'를 보면, 타워 발파에 앞선 작업 순서는 '하부 10m 이내 보일러 내부 및 설비류 철거' 이후 '사전 취약화'(타워 철거 때 목표한 방향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도록 기둥과 철골 구조물 등을 미리 잘라놓는 것)를 하게 돼 있다.
작업계획도에는 하부 100m 이내 철골과 설비류 철거를 명시한 사진도 첨부됐다.
실제로 5호기의 붕괴 당시 모습뿐 아니라 현재 양옆에 있는 4·6호기는 하부에 철골과 설비류가 없는 상태로, 위태로워 보이는 기둥 4개가 육중한 철재 구조물 덩어리를 위태롭게 떠받치는 형상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로 매몰된 작업자들은 붕괴 당시 타워 전체 63m 높이 중 25m 지점에서 사전 취약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하부 철골 등을 제거한 뒤 상부로 올라가서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의 '4·5·6호기 해체공사 기술시방서'에도 '일반적으로 사전 취약화 작업은 최상층부터 하고, 상층 부재의 내장재 철거나 취약화 작업이 완료되기 전에는 아래층 주요 지지부재 취약화를 실시해선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하부 철골과 설비 취약화를 마지막 단계에서 진행해 타워 하중을 버티게 해야 했는데, 제일 먼저 하도록 계획이 수립된 점이 의아하다"면서 "아울러 하부 철거를 했다면, 그 이후에 상부인 25m 작업에 인력을 왜 투입했는지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도 위험 감소책 적절했나…비숙련자 투입 의혹도
HJ중공업의 안전계획서에는 철거 작업 때 '벽체·기둥 해체 시 전도사고' 위험성 지수가 12로 명시돼 있다.
이는 위험성 평가 지침서상 등급별 구분에서 '상당한 위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안전 시설물 등을 보강하는 '공학적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전계획서에는 위험 감소 대책으로 매뉴얼을 정비하거나 교육을 시행하는 수준의 '관리적 제어'를 하면 지수가 4로 낮아진다고 했는데, 이는 현재 상태로 계속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등급에 해당한다.
시공사가 공학적 대책을 세워 적용했는지, 아니면 관리적 제어만 했는지 따져봐야 하는 부분이다.
숙련도가 낮은 작업자들이 투입됐는지도 살펴봐야 할 문제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한 근로자는 플랜트 건설 현장 일이 처음으로, 인력업체 소개로 이달 3일부터 근로계약을 맺고 일용직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울산화력의 공사 기술시방서에 '계약상대자는 충분한 용량의 검정(검증)된 장비를 가지고 우수한 기능공을 동원하여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할 책임이 있다'는 조항이 있는 점을 볼 때 공사를 하도급하는 과정에 '위험의 외주화'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공기 연장에 서천화력 실패 전례…무리한 작업 여부 따져봐야
공사 기간이 애초 계획보다 수개월 길어진 것이 사전 취약화 작업 등을 무리하게 서두르게 만든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체공사 기술시방서에는 보일러 타워 철거 완료 시점이 올해 4월, 안전계획서에는 7월로 돼 있다.
동서발전 측은 "HJ중공업 요청으로 공사 기간을 연장 승인했는데, 공기 지연에 따른 위약금 등으로 압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애초 이달 16일로 예정됐던 발파 일정을 맞추고자 막바지 단계에서 무리한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시공사 안전계획서에는 취약화가 이뤄지는 지점과 그 개수, 발파에 사용되는 폭약의 양 등이 명시돼 있는데, 어떤 근거로 도출됐는지는 아무 근거도 없이 대부분 일반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면서 "또 설명 내용이 도면과 일치하지 않는 등 허술한 구석이 많아 계획서 자체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같은 시공사가 올해 3월 서천화력발전소에서 이번처럼 발파를 진행했는데, 보일러 건물이 넘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면서 "당시 실패 때문에 이번 울산에서는 취약화 작업을 계획서보다 더 강하게 하도록 작업 지시를 내렸을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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