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망사고 항공사 1년간 운수권 제한…공항서 '둔덕' 제거(종합)
국토부 '항공안전 혁신 방안' 발표…12·29 여객기 참사 계기로 마련
방위각 시설 개선하고 조류충돌 방지…항공사 정비역량·안전투자 확충
(세종=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앞으로 사망자 발생 사고를 일으킨 항공사에는 1년간 일부 국제 노선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인 '운수권'을 배분하지 않는다.
공항에서는 충돌 시 큰 피해로 이어지는 둔덕 형태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을 제거하고, 항공기와 새의 충돌을 방지한다.
국토교통부는 30일 공항 시설, 항공사 정비·운항 체계, 항공 안전 감독 강화 등 항공 안전 전반에 대한 개선 대책인 '항공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착륙 시 항공기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공항 인프라를 전면 개선한다. 둔덕 위에 설치됐거나 콘크리트 기초대가 사용되는 등 '위험한'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은 올해 내 평평한 땅 위의 부러지기 쉬운 경량 철골 구조로 모두 교체한다.
국제기준에 맞춰 전국 공항에서는 240m 이상의 종단안전구역을 확보한다.
무안공항과 김해공항은 올해 하반기 중 우선 종단안전구역을 늘리고, 원주·여수공항은 부지 확장 가능성을 검토한 뒤 올해 10월까지 추진 방안을 확정한다.
하천·도로와 인접해 종단안전구역 연장이 불가능한 울산·포항경주·사천공항은 항공기 제동 효과를 내는 시멘트 블록인 활주로 이탈 방지장치(EMAS)를 설치할 계획이다.
조류 충돌의 재발 방지에도 나선다.
무안공항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민간공항 중 처음으로 조류탐지 레이더를 시범 운용한다. 내년부터는 인천·김포·제주공항 등에도 순차 도입한다.
이에 앞서 조류의 접근을 막는 드론을 김해·청주 등 전국 8곳의 민군 겸용 공항 중심으로 투입한다. 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조류분석·탐지 기능과 조류 기피제 등을 탑재한 드론을 개발해 무안공항 등에서 실증을 거친 뒤 오는 2028년부터 전국 공항에 배치할 예정이다.
현재 공항별 최소 2명인 조류충돌 예방 전담 인력은 4명으로 늘리고 무안공항은 12명까지 순차적으로 확충한다.
공항 반경 3∼8㎞인 조류유인시설 관리구역은 13㎞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국토부는 공항 시설 개선과 조류충돌 방지 예산으로 약 2천500억원의 추경 예산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대책은 항공사의 안전 경영과 투자, 정비 역량 확대에도 초점을 맞췄다.
큰 사고가 난 항공사에 대해서는 운수권을 배분하지 않는 고강도 제재를 도입하기로 했다.
운수권은 우리나라가 항공 자유화 협정을 맺은 미국, 일본 등 50개국 외의 외국 노선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다. 현재 항공기를 띄우기 위해 운수권이 필요한 국가는 대표적으로 중국,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등이 있다.
사망자 발생 사고를 일으킨 항공사는 사고일로부터 1년간 운수권 배분 대상에서 전면 배제한다. 1년 뒤 평가를 통해 안전 체계가 확보된 점이 확인돼야 다시 배분 신청을 받는다. 국토부는 이를 위해 오는 9월 운수권 배분 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테러·천재지변 등 대외 요인이 아닌 이상) 사망 사고가 나면 일단 제재를 가하고 추후 조사 결과 항공사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원상복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항공에 운수권 배분 제한이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의 대원칙인 '소급입법 금지'를 고려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평소 운수권 배분 심사 때에도 안전성 배점을 높인다. 안전성·보안성 평가지표 총점을 기존 35점에서 40점으로 상향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수권 배분에서 항공사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 통상 가장 점수가 높은 항공사와 낮은 항공사 간 3∼4점 차이가 난다"며 "5점 이상 차이 나면 운수권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또 2009년 이후 유지돼 온 항공사의 면허 취득 시 납입 자본금(국제선 여객 항공사 150억원, 국내선 여객 항공사 50억원)을 높인다.
대주주 및 주요 임원 등 경영권 변동이 생길 경우 재무 능력 및 사업계획을 사전에 검토하는 절차를 도입한다.
항공사의 안전투자 공시 제도도 개선해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우수 항공사는 인센티브도 부여할 계획이다.
또 항공사들의 비행 전·후 점검 및 중간 점검 등 정비시간을 늘린다. 우선 올해 10월 중 최근 사고가 발생한 B737과 A320F 기종에 대해 7.1∼28% 연장하고, 다른 기종에도 올해 말부터 새 기준을 적용한다.
'숙련된 정비사'의 기준도 2년에서 3년으로 높인다. 정기편을 주 5회 이상 운항하는 해외 공항에는 항공사별 현지 정비 체계를 의무적으로 구축하도록 한다.
조종사와 승무원이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도 높인다. 객실 승무원의 호칭은 '객실 안전 승무원'(가칭)으로 바꾸고 교육 훈련을 강화한다.
동시에 정부의 항공안전 감독·관제 역량 강화에도 나선다.
항공사의 안전 운항체계 확보 여부를 검사하는 운항증명(AOC) 제도를 강화해 항공기 대수가 20·40·80대 등 일정 기준 이상 늘어날 때마다 재평가받도록 한다.
현재 30명인 항공안전 감독관은 올해 40여명으로 증원하는 등 점진적으로 늘리고 교육·평가를 개선한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번 방안의 이행뿐만 아니라 공항·항공사 특별안전 점검 등 안전감독을 면밀히 추진해 나가고 향후 사고조사 결과가 나오면 추가 보완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항공 분야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항공안전 혁신 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
다만 이번 대책에는 항공안전 혁신위에서 논의한 '항공안전청' 등 별도 항공안전 전담조직 설립과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의 독립을 통한 투명성 강화 등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영국 항공청(CAA) 등 항공 안전을 위한 별도의 전문 조직을 두는 등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토부와 공항공사 내 안전 관리자들의 전문성 확보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해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단기적으로는 항공안전 인력 충원과 전문성 강화 교육에 집중하고, 조직 개편안의 장단점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해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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